청소기

유학 5년만에
청소기를 샀다.

일본에 와서
첫 2년 동안은 기숙사에 살아서
공용 청소기가 있었는데,

이사 온 이후로는
부직포로 대충 쓸어서
먼지와 머리카락을 모은 후에
끈끈이 롤러를 돌려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 걸레로 문질러줘야
청소 끄읏.

이 과정이 귀찮아서
고작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게 다였다.

토요일 낮에 청소하면
일요일 저녁까진 반짝 깨끗하다가

월, 화, 수 점점 머리카락이 쌓이고
목, 금요일 정도 되면 먼지뭉치가
눈에 밟힌다.

지난 주에
큰맘먹고 만 엔정도 하는 청소기를
하나 샀다.
꿈은 다이슨인데 현실은 걍 싼 거

싸이클론 방식이라
먼지주머니도 필요없고
나름 평도 좋아서
질렀다.

배송도 엄청 빨라서 주문한
다음날 도착. 헐.

오자마자 박스를 뜯고 시험삼아
청소기를 돌려보는데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이…
미용실이야 뭐야.
먼지통 하나가 가득 찼다.

당황하지말고 먼지통을 비운 후에
주방, 욕실 앞을 청소했더니
회색솜사탕먼지뭉치가 뭉게뭉게.

아놔.
그래도 청소기가 제대로 잘 작동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
근데 왜 마음 한켠이 씁쓸한지.

그날 저녁에 또 한 번 돌렸더니
머리카락은 별로 없는데
먼지뭉치는 1/3 정도 또 나온다.

아니 얘넨 어디 숨어있다가 기어나오는건가.
바퀴먼지

그 후 매일 저녁 집에오면
청소기를 돌려주고 있음.

3분만에 청소가 후딱 끝남.
야신난다.

지지난주에 목감기가 와서
그분은 계절바뀐거 참 잘도아셔
감기기운은 나아졌는데 기침이 안떨어진다.

의사선생님이 알레르기 증상 같다던데,
혹시 먼지알레르기 아니었나 몰라.

내가 왜 진작 청소기를 안 샀을까.
어이쿠ㅠ

그래도 이제라도 산 게 어디냐며
소소한 위안을 해본다.

20140902